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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해바라기 - 구속주회 한국지부 바오로 신부

돌핀샘 2010. 12. 15. 10:01

해바라기


주님을 향할 때
우리는 행복합니다.

해를 향할 때
해바라기는
더욱 아름답습니다.

건강하고 성숙한 공동체는
자신 안에 갇혀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소외당한 이들을
품고 돌보며 함께
길을 걸어갑니다.

가다라인들의 이방인 지역에 가셔서
예수님은 마귀 들린
두 사람을 만납니다.
그들은 무덤에서 기거합니다.

무덤은 공동체 안에서
우리가 느끼는 절망과 비탄,
실의와 우울증에
빠져 있는 이들입니다.

그들은 너무나 아프기에
너무나 사나운 척 보입니다.

그들에게 다가가기는
참으로 어렵습니다.
심지어 작은 접근도
그들은 용납하지 않습니다.

그들이 갈 곳이란 정말
무덤밖에 없는지도 모릅니다.

공동체를 떠나고 싶어하지만
떠날 곳이 없기에
공동체와 가장 가까운
무덤을 선택하며
‘주변인’으로 서성거립니다.

이제 이들을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우리의 시각이
바뀌어야 합니다.

그들은 아픈 사람들입니다.
더 깊이 사랑하고
더 조심스럽게
그들의 삶에 귀를 기울이며
평화를 주어야 합니다.

이들을 하느님의 선물로
기쁘게 받아들이는 일이
우리 마음에서 우선적으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부르짖음을
외면하지 않으시고
귀담아 들어주십니다.

가장 중요한 인간 관계는
진실임을 보여 주시듯
그들에 대해 느끼는 바를
솔직하게 표현하십니다.

더 많이 먹기 위해서
저 혼자 잘 살기 위해 싸우는
돼지 떼가 되어서는
공동체를 이룩하지 못합니다.

공동체가 지향해야 하는 것은
환영과 신뢰이며 개방입니다.

이러한 가치들이
사라진 공동체는
더 이상 공동체가 아니고
군대식 집단이 됩니다.

예수님께서 추구하신 공동체는
모든 사람과
모든 공동체를 위한 것이었습니다.

가다라인들의 지역 공동체에서는
돼지가 그들의 재산이었습니다.

돼지 떼를 잃는다는 것은
그들의 재산을 잃는다는 것입니다.

인간 생명의 존엄함보다
더 우선적으로 놓여야 할
가치는 없습니다.

돈을 잃더라도
잃었던 사람을
다시 찾아야 합니다.

인간을 인간으로 보지 않고
유용성과 효율성
성취와 업적이라는
세상적 가치를 추구할 때

우리 인간은 늘 돼지 떼처럼
서로를 경쟁 상대로 생각하며
불안과 두려움 속에서
살아가게 됩니다.

드디어는 절망 속에서 허덕이며
슬픔과 지침, 죽음이라는
암흑 속을 걷게 됩니다.

돼지 떼가 호수를 향해
비탈을 내리달려 물속에
빠져 죽고 말았듯이(8,32)

우리의 어둠과 연약함,
결함과 두려움을
인정하거나 용서하지 않는 공동체는
아무런 성장도 있을 수 없습니다.

세상의 가치로 뛰어든 공동체는
집단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가다라인들의 공동체는
아직도 자신들의 그림자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진정한 삶을
일깨워 주신 예수님에게
떠나가 주십사고
청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진정으로
만나지 않으면
공동체도, 공동체를 구성하는 개인도
성숙할 수 없습니다.

죽음을 향했던
모든 부정적인 삶들은
주님의 말씀대로

“가라.”(마태 8,30)

* 구속주회 한국지부 - 바오로 신부

출처 : 신학하는 즐거움
글쓴이 : 하늘둥지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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