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

유달산 (목포)

돌핀샘 2016. 6. 15. 07:48






목포 유달산에서 본 새벽 풍경




신안의 비금도 그림산&선왕산을 가기위해

서울에서 무박으로 6월11일 밤 10시 출발~목포에 새벽 4시 도착했다.

6월12일 첫 여객선을 기다리는 동안, 새벽 유달산을 오른다




날씨가 맑지 않아서

쨍한 새벽 풍경은 아니지만,그래도 유달산에 올라서면

우선 야경이 너무 아름답고 다도해의 시원한 풍경이 설레임을 준다,















목포시,,








용머리 해안으로 여명이 트인다,




유달산       儒達山                     

       



요약 전라남도 목포시 남서부에 있는 산.

                                                         

유달산                

노적봉, 전라남도 목포시 유달동 유달산에 있는 봉우리


높이 228m. 산정이 가파르고 기암절벽이 첩첩이 쌓여 있어 호남의 개골산으로도 불린다.

 산의 동쪽과 남쪽의 완경사 산록은 이미 도시화가 진행되었다.

 산정에서는 목포시와 다도해를 한눈에 볼 수 있으며, 과거 외적을 경계하던 봉수대가 2개 남아 있다.

 약 100m 내려오면 정오를 알리던 오포대와 노적봉이 있다.




노적봉은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이 군량미를 쌓아둔 것처럼 가장해 적을 속인 곳으로 알려져 있다.

산기슭에는 우리나라 최초로 조성된 조각공원이 있으며, 그 옆쪽으로는 전국 각지에서

수집한 난공원이 있어 유달산의 운치를 더해준다. 그밖에 대학루·관운각·소요정·유선각·

달성각과 유달사·수도사·관음사 등의 사찰이 있다.

유선각은 1932년 목포 개항 35주년을 기념해 건립했으며, 처음에는 목조건물이었으나,

 현재는 콘크리트로 개축했다. 또한 이충무공 동상, 어린이 헌장탑과 놀이터, 4·19기념탑, 충혼탑,

 목포의 눈물 노래비가 세워져 있다. 바다에 임해 있는 서쪽 산록에 유달해수욕장이 있다.




일등바위의 새벽
















하나둘 조명이 꺼지면서 더욱 흐려지는 목포대교









































목포시내는 해무로 답답하게 아침이 열리고 있다...

맑았으면 도심의 풍경이 다도해와 어울어져 멋졌을건데,,,아쉬움~




































애기업은바위




종바위




고래바위















































                                  * 이난영의 목포의 눈물 노래비 *                                         
  
"사공의 뱃노래 가물거리며 / 삼학도 파도깊이 숨어드는데 / 부두의 새악시 아롱젖은 옷자락 / 이별의 눈물이냐 목포의 설움 "
1930년대 가수 이난영씨가 불러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노래 '목포의 눈물'이다. 1934년 조선일보사는

 일제의 탄압으로 억눌려 있던 우리 민족의 고유한 정서를 북돋우기 위한 문화사업의 하나로 향토 신민요 노래가사를 공모했는데,

 목포 출신인 문일석씨의 가사가 당선되었고, 작곡가 손목인씨가 곡을 붙여 '목포의 눈물'노래가 탄생하게 되었다.

'목포의 눈물'은 음반이 출시되자마자 대히트를 기록하였으며 전국적으로 알려져 오늘날까지도 우리나라 사람들이 즐겨부르는 대표적인 목포의 노래이다.
 
목포의 눈물노래비는 바로 이 노래를 부른 목포 출신 가수 이난영씨와 작사가 문일석씨를 기념하기 위해,

1969년 예총 목포지부가 주관하여 세운 것으로 비의 높이는 211cm, 너비는 247cm이다.

목포항에서 20분 정도 걸어가면 운치있게 지어진 목포문화원 건물이 나타나는데, 이 건물은 본래 1900년

일본영사관으로 지어진 것을 1990년부터 목포문화원에서 사용하고 있다. 이곳에서 조금만 더 걸어 올라가면 유달산 입구에 도착하게 된다.
 
* 목포의 상징, 유달산 *
유달산은 서울의 남산처럼 목포를 대표하는 상징이라 할 수 있어 목포를 처음 찾는 여행객이라면 꼭 한번 둘러보아야 하는 관광지라 하겠다.

목포의 눈물노래비는 바로 이 유달산중턱에 세워져 있다. 이곳에 오르면 푸른 바다에 둘러싸인 목포 시가지,

유달산의 수도하던 선비를 사모하던 세 처녀가 섬으로 변했다는 전설이 얽혀 있는 삼학도, 그리고 다도해의 절경이 한눈에 내려다보여

 저절로 목포의 눈물 노래 가락을 흥얼거리게 한다. 목포의 눈물 노래비가 자리잡고 있는 유달산(해발 228m)은

 전지역이 화강암으로 이루어져 있는 돌산이다. 소나무에 의해 조금 가려지기는 했지만, 유달산은 산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바위덩어리로 보이는데 산 입구에서부터 정상까지의 등산코스가 대부분 돌계단으로 이루어져 있다.

 유달산은 목포시민들이 즐겨찾는 곳으로 등산로가 잘 정비되어 있고, 산 주변에는 2.7km의 유달산 일주도로가 개통되어 있어

 접근하기에도 편리하다. 갖가지 모양의 기암괴석과 정자, 누각, 사찰 등이 산재해 있고,

산 아래에는 1만3,000여 평의 부지에 한국조각연구회 회원들의 작품 100여 점이 전시되어 있는 조각공원.

그리고 한국난, 동양난, 양난 등 250여 종의 난을 전시하고 있는 난 전시관 등이 있어 찾는 이의 즐거움을 더해준다.


  
가을 문학예술기행의 목적지로 선택하기에 목포만큼 적합한 장소도 없을 것이다.

목포의 눈물 노래비 이외에도 목포에는 시원스레 펼쳐진 다도해의 절경을 배경으로 향토문화관,

박화성 문학기념관, 남농 기념관, 해양유물전시관 등 다양한 문화와 예술을 감상할 수 있는

볼거리들이 풍성하기 때문이다. 목포의 눈물을 흥얼거리며

유달산 정상에 올라도 보고, 가을바다를 감상하며 예술인들의 숨결을 느껴 보고,

신선한 해물요리와 바닷가레스토랑에서의 커피한잔으로 여행을 마무리하는 것은 어떨까 추천해본다.
  




 * 목포의 눈물, 이난영에 대하여 *
이난영 (본명 옥례)은 1916년 여름. 목포 앞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양동의 초가집에서 태어났다.

아버지의 술주정과 가난에 시달리다 못한 어머니가 제주도로 가정부살이를 떠나버린 것은 그녀 나이 10세 무렵.

그 때부터 오빠가 다니는 솜공장(조선면화 공장)의일도 거들었다. 그러다가 북교 초등학교 4학년 때에

어머니가 계신 제주로 가게되어 학교도 중퇴했다. 엄마와 함께 제주도의 생활이 시작되고 극장을 경영하는

주인집의 아이를 돌보면서 흥얼거리는 노래소리를 높이 평가하게 된 집주인이 그녀를 소위 막간가수

(영화나 연극이 시작 되기전 나와서 노래하는 가수)로 활동하게 하였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삼천리 가극단장의 권유로 특별 단원으로 채용된 것이 1932년 16세되던 해였다. 극단단원으로 일본 공연을 갔었으나

흥행에는 실패했다.우연히 OK레코드 이철 사장의 눈에 띄어 작곡가 손목인에게

 소개되어 목포 출신문일석의 작사인 "목포의 눈물" 을 부르게 된것이 드디어 노래의 여왕 이난영이 탄생하는

 계기가 되었다. 목포의 눈물은 이난영 특유의 목소리와 우리의 한이 서린가사로 지금도 널리 애창되고 있다.
그녀는 4남 3녀의 자녀를 두었는데 모두 미국에서 가수로 활동하고 있다.



(자료  백과사전)



***며칠전 이난영 탄생 100주년 기념으로 고 이난영의 일생을

M TV에서 스페셜로 본 기억이있어 오늘 이곳에서 목포의눈믈을 읽어보니

우리나라의 가요계 한많은 역사가 더욱 마음에 와 닿는다***













































노적봉    盧績峯                     

     

위치 전라남도 목포시 죽교동 (죽교동)

       

* 이순신 장군의 전술과 강강수월래의 전설이 담긴 곳, 노적봉 *
노적봉은 목포시 유달산에 있는 거석 봉우리를 말한다.

이 봉우리는 임진왜란 때 충무공 이순신(李舜臣) 장군이 적을 물리치기 위해

 이용한 것으로 유명하며, 이순신 장군의 지형을 이용한

고도의 심리전이 돋보인 곳이다.임진왜란 당시 군사적 열세를 만회하기 위해서

 이엉을 엮어 바위를 덮었는데, 마치 그것이 군량미를 덮어놓은 노적처럼 꾸며서,

군량미가 대량으로 비축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게 했다. 또한, 주민들에게 군복을 입혀서

노적봉주위를 계속 돌게 해서 마치 많은 대군이 있는 것처럼 위장하게 했으며

 영산강에 백토가루를 뿌려 바다로 흘러드는 물줄기가 쌀뜨물로 보이게 하여

왜적들에게 아군의 군세를 위장하여 왜장이 군사를 돌려 후퇴하게 했다는 것이다.

당시 노적봉을 돌던 전술은 훗날 문화예술로 승화되어, 강강수월래로 발전하였다는 전설이 서려 있다.








다산목








장군목





































바위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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