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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4.3사건 역사관

돌핀샘 2019. 5. 17. 00:28












제주 4 · 3 사건

제주 4 · 3 사건은 1947년 3월 1일을 기점으로 하여 1948년 4월 3일 발생한 소요 사태 및 1954년 9월 21일까지

제주도에서 발생한 무력 충돌과 진압 과정에서 주민들이 희생당한 사건을 말한다. 당시 제주도는 광복 후

일본군이 철수하고 외지에 나가 있던 제주인 6만여 명이 귀환하였으나, 이들은 직업을 구하지 못하여 생업을

 영위하기 어려운 상황에 놓였다. 여기에 생필품 부족과 콜레라 발병, 극심한 흉년 등이 겹쳤으며,

일제에 부역한 경찰들이 미군정하에서 다시 경찰로 변신하고, 군정 관리들이 사리를 채우는 부정행위를 일삼는 등

 여러 가지 사회적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었다.이런 상황에서 1947년 3 · 1절에 경찰이 시위하는 군중에게 발포하여

일반 주민이 사망 또는 중상을 입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이를 계기로 남로당 제주도당은 반경찰 활동을

조직적으로 전개한 결과, 제주 도내 전체 직장의 95% 이상이 경찰의 발포에 항의하여 '3 · 10 총파업' 에 동참하였다.

미군정은 제주도 도지사를 비롯한 군정 수뇌부를 전원 외지인으로 교체하고, 경찰과 극우 단체인

서북 청년단 단원을 대거 동원하였다. 이로부터 4 · 3 사건이 발발하기 전까지 약 1년간 2,500여 명이 구금되고,

테러와 고문이 자행되었다. 수세에 몰린 남로당 제주도당은 무장 투쟁을 전개하기로 결정하고,

1948년 4월 3일 350명의 무장대가 제주 도내 12개 지서와 우익 단체들을 공격하였다. 이들은 경찰과 서북 청년단의

무자비한 탄압 중지, 남한 단독 선거 및 단독 정부 수립을 반대, 통일 정부 수립 등을 촉구하였다.
1948년 5월 10일의 남한 단독 선거에서 제주도는 투표자 과반수 미달로 무효 처리되었고, 다음 달 23일에 재선거를

 실시하려는 미군정의 시도도 수포로 돌아갔다. 이 과정에서 5월 20일 경비대원 41명이 탈영하여 무장대에 가담하였고,

6월 18일 경비대 연대장이 부하 대원에게 암살당하는 사건도 발생하였다.

 이후 1948년 8월 15일 남한에 대한민국이 수립되고, 다음 달 9일 북한에 공산주의 정권이 수립되었다.

이승만 정부는 그해 10월 11일 제주도 경비 사령부를 설치하고 본토의 군 병력을 증파하였고,

11월 17일 제주도에 계엄령을 선포하였다. 이에 앞서 중산간 지대를 통행하는 자는 폭도배로 간주하여 총살하겠다는

포고문이 발표되었고, 중산간 마을에 대대적 진압 작전이 실시되었다.1948년 11월부터 중산간 마을에 대한 강경 진압으로

 마을의 95% 이상이 불에 타 없어지고 많은 인명이 희생되었다. 이로 인하여 삶의 터전을 잃은

 중산간 마을 주민 2만 명가량이 산으로 들어가 무장대의 일원이 되었다. 진압 군경은 가족 중에 한 명이라도 없는 경우에

도피자 가족으로 분류하여 부모와 형제자매를 대신 죽이는 이른바 '대살' 을 자행하기도 하였으며, 재판 절차도 없이

주민들이 집단으로 사살되기도 하였다. 1949년 3월 제주도 지구 전투 사령부가 설치되면서 진압과 함께 선무 작전이 병행되었으며,

귀순하면 용서한다는 사면 정책에 따라 많은 주민이 하산하였다.1949년 5월 10일 재선거가 성공적으로 치러진 데 이어

6월에 무장대 총책인 이덕구가 사살됨으로써 무장대는 사실상 궤멸되었다. 그러나 이듬해 6 · 25 전쟁이 발발하면서

 보도 연맹 가입자와 요시찰자 그리고 입산자 가족 등이 대거 예비 검속되어 죽임을 당하였고,

전국 각지의 형무소에 수감되었던 4 · 3 사건 관련자들도 즉결 처분되었다.이 사건은 1954년 9월 21일

한라산의 금족 지역이 전면 개방됨으로써 발발 이후 7년 7개월 만에 막을 내렸다. 이 사건 이후 희생자 가족들은

 죄의 유무에 관계없이 당시 군경 토벌대에 의하여 죽임을 당하였다는 이유만으로 이른바 '빨갱이' 딱지가 붙어 피해를 대물림하였다.


출처 (다음백과)




제주 4.3사건은 얼마전

TV다큐멘터리로 상세하게 봐서,아리하게 마음에 와 닿는

사건으로,제주에 오면 꼭 한번은 들러 가슴아픈 제주역사의 참 비극속으로

희생된 영혼들을 추모 하며 역사의 현장을 체험하고 싶었다.


4.3사건같은 비극의 역사는 다시는 일러나지 말아야 하며,

죄도 없이 고문당하고 죽어간 영혼들의 안식을 위해 많은 기도를 해야 겠다.

(** 광주사건도 마찬가지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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