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수리 두물머리
두물머리는
일반적으로 두 강물이 머리를 맞대듯이 만나 하나의 강으로
흐르는 곳의 지명으로 사용되는데,
합수머리,두머리,이수두(二水頭),양수두(兩水頭)등으로도 불린다.
경기도 양평군 양서면 양수리(兩水里)에 위치한
북한강과 남한강이 하나의 강으로 합쳐져 한강으로 흐르는 지점을 뜻하기도 한다.
출처 (백과사전)
두물머리 느티나무
남한강과 북한강 줄기가 만나는 양서면 양수리일대는
큰 물줄기둘이 머리를 맞대어 두물머리라고 합니다.
서울로 오가던 사람들이 주막에서 목을 축이고,냇물을 건너 말에 죽을 먹이며
잠시 쉬어 가던 곳으로 예전에는 말죽거리라고도 불렀습니다.
이곳에 위치한 높이 30m 둘레8m의 두물머리 느티나무는
사람들의 든든한 쉼터로 400여 년 동안 자리를 지켜 왔습니다.
여기에 2004년 국내 유일의 조선장인 김귀성씨가건조한
황포돛대가 강과 느티나무와
어우러져 더욱 아름다운 풍경을 자아내고 있습니다.
대한생명과 아름지기는 이곳에 작은 정성을 더하여 사람들과
자연의귀한 만남을 지켜가고자 합니다.
2008, 12
400여년이 넘는 오랜 수령을 안고 있는
두물머리의 느티나무는
드라마와 영화의 배경으로 많이 알려 지면서,
이제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해 졌다.
내가 처음으로 양수리 두물머리를
알았을때도 1992년에 방영되었던 드라마 "아들과 딸"
에서 주인공 후남이와 귀남이가 사는 마을로 나왔을때 부터 였다.
너무 아름다운곳이라 생각해서 이듬해인 1993년 겨울에함 갔었는데,,
너무 추워서 꽁꽁 얼어 왔던 그때부터 더러 가끔씩 다녔던것 같다.
양수리로 오시게
박문재
가슴에 응어리진 일 있거든
미사리 지나 양수리로 오시게
청정한 공기
확트인 한강변
소박한 인심이 반기는 고장
신양수대교를 찿으시게
연꽃들 지천을 이루는 용늪을 지나
정겨운 오리떼 사랑놀이에 여념없는
아침 안개 자욱한 한폭의 수묵화
이따금 삼등열차가 지나는 무심한 마을
양수리로 오시게
그까짓 사는 일 한 점
이슬 명예나 지워 다 버리고
그냥 맨 몸으로 오시게
돛단배 물위에 떠서 넌지시 하늘을 누르고
산 그림자 마실 나온 다 저녁답 지나
은 구슬 뽀오얗게사운거리는 감미로운 밤이오면
강 저편 불 빛들이 일렬 종대로 서서
지나는 나그네 불러 모으는 꿈과 서정의 마을
마흔 해 떠돌이 생활
이제사 제 집 찿은 철없는 탕이같이
남한강과 북한강이 뜨겁게 속살 섞는 두물머리로
갖은 오염과 배신의 거리를 지나
가슴 넉넉히 적셔줄
사랑과 인정이 넘치는 처용의 마을
이제는
양수리로 아주 오시게
시인 박문재님은
정겹고 서정적인 양수리의 풍경을
정말 가슴에 와 닿도록
아름다운 "詩"로 양수리를 그립게 한다.
오래전 옛날 양수리 쪽에서 약수를 떠나 먹을때
몽환적인 새벽안개 가득한 양수리의 풍경이
너무 아름다워 먹을물이 남았는데도 새벽에 물 핑계로 달려온적도 있었다.
지금은 대중교통이 좋아져서 자동차 없이도 자주 다닐수 있는 곳이지만,
오래전엔 자동차 없이는 다니기가 그리 쉽지 않았다,
그래서 지금도 가끔,,
박문재님의 詩처럼 가슴에 응어리진 일이나
도심이 답답하다고 느낄때에는
틈 나는대로 양수리를 찿곤 한다, 꼭
두물머리가 아니어도, 양수리는 그냥 좋다...
양수리 어느곳이라도 고향같은
넉넉함으로 보듬어 주는곳, 잡다한 일상의 찌꺼기들을
모두 정화 시켜주는 곳,, 그래서 마음을 비워놓고
돌아갈수 있는 그곳 양수리가 그냥 좋다!!!
원추리
요즘은 자전거도로가 잘~되어 있어
서울에서 잔차타고,쌩쌩~
달려~쉽게 다녀올수 있는 길이 있어 더욱 좋다.!!!
루드베키아
배다리가 개통되면서
세미원의 출입이 용이해졌지만 석창원도
세미원의 입장료를
구입해야 들어갈수 있다.배다리
개통전엔 두물머리 가면서 그냥 출입이 가능했는데,,,
배다리의 역사
『배다리』에 관한 최초의 기록은 중국 주나라 문왕(文王)때이다.
우리나라에는 고려시대부터 다양한 사료들이 전해지고 있으며,
지금도 전국 곳곳에 배다리라는 지명이 전해지는 것을 미루어 볼때 선조들이
세운 교량 가운데 배다리가 중요한 몫을 차지 하였다는 것을 알수 있다.
그중 가장 대표적인것은 1789년, 정조께서
한강에 설치한 배다리로서 설치 규모의 웅장함과 화려함,
교량의 설치 기법 등에서 단연 세계 최고로 꼽힌다.
정조께서는 양주에 있던 부친 사도세자의 묘소를 수원부로 이전하고
능호를 현릉원(顯陵園)이라 이름 하였다.그리고 매년
한강의 배다리를 설치하여 현릉원을 참배 하였는데 이를 위해
다산 정약용 선생등이 참여하는 주교사(舟橋司)를
설립토록 하여 배다리를 건설하고 관리 하였다.
여기 세미원에 정조시대의 배다리를 재현하여
민족 고유의 문화유산을 세계에 널리 알리고,정성을 다하여
부무를 섬기고자 했던 정조의 효행과
설계에 참여했던 정약용 선생의 학덕을 기리고자 한다.
7월 초 인데도 연꽃이 많이 피었다.
수련
두물머리의 풍경을~모아본다..
이글은 다산 정약용 선생께서 해남 대흥사 초의스님에게
양평에 올라와 살것을 제안하신 서한 중
두물머리에서 강물을 따라 오르내리며 시를 짓고 거문고를 타며
함께 즐기면서 살자고 권유하는 내용을 발췌한 것이라고 한다.
사람들에 의해 길들여진
물고기들이
새우깡을 먹을려고 물속 전쟁을 벌이고 있다.
어쩌나?물고기가 새우깡을 먹다니...?
바다의 갈매기들만 새우깡을 좋아하는게 아닌것 같다.
호수에 가면 오리떼들도 사람들이 주는
새우깡을 받아 먹으려고 꿱 꿱 거리며 달려 들고.
산에사는 새들도 새우깡을 부셔서 주면
사람 손바닥에 앉아서 쪼아 먹는다.다람쥐도 라면을 먹는 세상,
정말 그러다가 조류 어류 들~산짐승들까지 사람들이 주는
먹이에 길들여 질까 두렵기도 하다.여행객들이나 등산객들이
조심해서 야생 동물이나 조류&어류들에게
본분의 먹이를 찿지 못하게 해서는 절대 안될것 같다,
마름
컴프리
석잠풀
백련
부처꽃
구절초
어느해인가 저배(황포돛대)를
만들었다는 분을
두물머리 나루터에서 만난적이 있었는데,
돛대안으로 그분의 모습이 지나간다~
두물머리에 황포돛대가 없으면 조금은 쓸쓸해 보이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