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하회마을 (안동)

돌핀샘 2013. 4. 15. 02:49

 

 

 

 

한국의 역사마을  안동 "하회마을"

 

 

 

 UNESCO 세계유산 안동 하회마을은

2010년 7월 브라질 브라질리아에서 개최된

제34차 세계유산 위원회에서

경주양동마을과 함께 우리나라의 열번째 등재 되었다.

 

 

 

유네스코는 등재 결의안에서 "한국의 역사마을" : 하회 ·양동 ' 은

주거건축과 정자(亭子), 정사(精舍), 서원(書院) 등 전통건축물들의

조화와 그 배치 방법및 전통적 주거문화가 조선시대의 사회구조와 독특한 유교적

양반문화를 잘 보여 주고 있으며, 이러한 전통이 오랜 세월동안

온전하게 지속되고 있는점이 세계유산으로 등재되기에 손색이 없다고 평가 하였다.

또한 문집, 예술작품과 조선시대 유 학자들의 학술및

문화적 성과물과 공동체 놀이, 세시풍속및 전통 관혼상제 등 주민들의 생활과

 신앙에 관계된 무형유산이 세대를 이어 전승 되고 있는 점도 높이 평가 하였다.

 

 

 

하회마을의 세계유산 등재는 한국인의 전통적인 삶이

그대로 전승 되고 있는 생활공간이며. 주민들이 세대를 이어

삶을 영위 하고 있는 살아있는 유산(Living Heritage)으로서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살아온 한국인들의 삶

자체를 세계적으로 인정받았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있다.

 

 

 

하회마을 벚꽃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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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유산 한국의 역사 하회마을은

 

 

이 마을 풍산류씨가 600여 년간 대대로 살아온

 한국의 대표적인 동성마을이며, 와가와 초가가 오랜 역사속에서도

잘 보존된 곳이다. 특히 조선시대 대 유학자인  류운용 선생과

임진왜란때 영의정을 지낸 류성용형제가 자라난 곳으로 유명하다.

 

마을이름을 하회(河回)라고 한 것은 낙동강이 "S"모양으로

 마을을 감싸안고 흐르는 데서 유래 되었다.

하회마을은 풍수지리적으로 태극형.. 연화부수형.. 행주형에 해당하며,

 이미 조선시대부터 사람이 살기에 가장 좋은곳으로도 유명 하였다.

 

마을동쪽에 태백산에서 뻗어나온 해발 327m의 화산이 있고, 이 화산의 줄기가

낮은 구릉지를 형성 하면서 마을의 서쪽 끝까지 뻗어 있으며,

수령이 600여년된 삼신당 느티나무가 있는 지역이 마을에서 가장 높은 중심부에 해당한다.

 

하회마을의 집들은 삼신당 느티나무를 중심으로 강을 향해 배치되어 있기 때문에

좌향이 일정하지 않다. 한국의 다른마을들의 집들이 정남향 또는

돔남향을 하고 있는것과는 상당히 대조적인 모습이다. 또한 큰 와가를 중심으로

주변의 초가들이 원형을 이루며 배치되어 있는것도 특징이라 하겠다.

 

하회마을에서는 서민들이 놀았던 "하회별신 굿 탈놀이" 와 선비들의 풍류놀이였던

"선유줄불놀이"가 현재까지도 전승되고 있고,

우리나라의 전통생활 문화와 고 건축 양식을 잘 보여 주는 문화유산들이 잘 보존되어 있다.

 

 

 

 엘리자베스 영국여왕의 방문기념 사진 .

 

 

 

영국여왕의 방문 이후 "안동 화회"마을은

세계인의 마을로 더욱 사랑을 받고 있으며, 관광객수가

더욱 많아졌다고 한다, 그리고 영국여왕 방문 이후

  "엘리자베스 2세 여왕방문 기념사진관"이 문을 열었다.

엘리자베스2세 영국여왕 방문 기념 사진관에는 "하회마을 방문때

여왕이 받았던 생일상과 선물 모조품, 사진등 70여점이 전시되어 있다.

 

 

 

영국여왕이 받았던 생일상

사진으로 봐도 우리나라의 전통 음식의 예를

모두 갖춰서 차린듯 하다.

 

 

 

마을입구에서부터

하회마을임을 느끼게 해주는 화회탈의 형상들,,

 

 

 

 

 

 

 

활짝핀 벚꽃과

개나리가 4월의 풍경을 상큼하게 해 준다,

 

 

 

마을 입구으; "입향조기적비"을 지나

세계유네스코에 등재되어 있는 화회마을의 여행이 시작 된다.

 

 

 

새벽까지도 비가 오락 가락 했었는데

다행히도 날씨는 맑아지고 있어 봄 풍경을 아름답게 해 준다.

 

 

 

 

고즈넉한 초가 마을.

 

 

 

해설사의 해설을 들으며

우리나라 전통 마을의 풍습과 고택의 역사를 배운다.

 

 

 

 

 

 

 

 

 

 

 

 

4월의 진달래 뒤로

전통이 서려 있는 고택이 양반가의 위엄을 느끼게 한다.

 

 

명자나무 꽃

 

 

 

 

 

 

 

하회마을의 풍경을 담아본다.

 

 

 

 

 

 

 

 

 

 

 

 

 

 

 

안동소주 만드는 법도 기록해 놓았다.

 

 

 

 

 

 

 

 

 

 

 

 

 

 

 

 

 

 

 

 

 

 

 

 

 

 

 

 

 

 

 

 

 

 

 

 

초가 민박도 있다.

 

 

 

하동고택의 문간채는

소박한 추가로 되어 있지만

안으로 들어가면 상당히 큰 규모라고 한다.

조선시대 양반들의 저택에서는 안채와 사랑채를

제외한 부속건물은 초가를 많이 사용했다고 한다.

 

 

 

 

 

 

 

 

 

 

 

 

 

 

 

 

 

 

 

조선시대에 쓰던 가마인가?

드라에에서만 보던 가마도 보관되어 있다.

 

 

 

고택의 넓은정원

 

 

 

 

 

 

 

현재 살림을 하고 있는지?

툇마루 위에 덩그랗게 벗어놓은 낡은 털신이

고택에 비해 쓸쓸함을 준다.

 

 

 

도마를 만드는 장인인가요?

여쭤보니 원목 그대로 만들어 판매도 한다고 한다.

 

 

 

 

우리주부들에게 꼭 필요한 도마,,를

나무의 원형 그대로 만들어 위생에도 좋을것 같아서

들어 보니 무게감이 든든해 보인다.

가격대는 :  2,,3,, 4 만원 정도로 견고한 원목에 비해 저렴 하다.

 

 

 

 

 

 

 

 

 

 

 

화경당 북촌댁  (和敬堂) (민속자료 제84호))

1797년에 류사춘이 사랑채, 날개채, 대문채를 짓고,1862년에

그의 증손자 류도성이 안채, 큰사랑채, 사당을 지었다.

집의 규모가 웅장하고

 대갓집 격식을 완벽하게 갖추어 사대부 가옥의 면모를 보여 주고 있다.

 

화경당은 "和" 로 어버이를 섬기고, "敬" 으로 임금을 섬긴다는 뜻이다.

 

 

 

 

 

 

 

 

 

 

 

 

 

 

 

 

 

 

 

 

 

 

양진당 (보물 제 306호)

풍산에 살던 류종해공이 하회마을에 들어와

15세기경에 최초로 지은 집으로 풍산류씨 대종택이다.

"養眞堂" 이라는 현판은 풍산류씨 족보 를

최초로 완성한 류영의 호에서 따온 것이며, "입암고택(立巖古宅)"

이라는 현판은 겸안선생과 서애선생의 부친인 입암 류중영의 호에서 따온 것이다.

 

 

 

 

 

 

 

양진당 입암고택

 

 

 

충효당 (보물제 414호)

서애 류성룡선생의 종택으로,청백하게 지낸 선생이

삼간초옥에서 별세한후

그의 문화생과 지역 사람이 선생의 유덕을 추모하여

졸재 류원지를 도와 건립 하였다.

"충효당 (忠孝堂)" 이라는 당호는 선생이 평소에

"나라에 충성하고 부모에 효도 하라"는 말을 강조한 데서 유래 하였다.

 

 

 

 

 

 

 

 

 

 

 

 

 

 

 

 

 

 

 

 

 

 

 

 

 

 

 

 

 

 

 

 

 

 

 

 

 

 

 

 

 

 

 

삼신당 신목  (보호수)

수령이 600 여 년 된 느티나무로 마을의 정 중앙에 위치하며

아기를 점지해 주고 출산과 성장을 돕는 신목이다.

매년 정월 대 보름에 이곳에서 마을의 평안을 비는 동제를 지낸다.

 

 

 

 

 

 

 

 

 

 

 

하얀종이에 아기를 점지해 달라고 소원을 비는

염원들이  헤아릴수 없이 많이 리본처럼 달려 있다.

 

 

 

 

 

 

 

 

 

 

 

 

 

 

 

 

 

 

 

 

 

 

 

 

 

 

충효당 영모각 (永慕閣)

영모각은 서애 류성룡(1542~1607)선생의 유물을

보관 전시 하는곳으로 류성룡 종손 가문적 (보물 제 160호)와

류성룡 종손 가유물(보물 제460호) 및 서애선생 필첩, 영의정 임명교지,

 도체찰사교서 (都體察使敎書),선조친필 밀부유서 (密符諭書),

광국공신교서 등 각종 유물과 문서가 보관되어 있다..

"영모각 (永慕閣)"이라 쓰여진 현판은

 개관식때 고 박정희 대통령이 써서 보낸 것이라 한다.

 

 

 

 

 

 

 

 

 

 

 

 

 

 

 

 

 

 

 

 

 

 

 

 

 

 

 

 

 

 

 

 

 

 

 

 

 

 

 

 

 

 

 

 

 

 

 

 

 

 

 

 

 

 

 

부용대 (芙蓉臺)

깍아지른 기암 절벽과 유유히 흐르는 강물이

한폭의 그림을 이루고 있으며,

 정상에서 바라보는 화회마을은 신비감을 자아낸다.

 

 

 

겸안정사(謙唵精舍) (중요 민속자료  제89호)

겸암 류운룡 선생이 1567년에 학문연구와 제자 양성을 위해

지은 정사이다."겸암정 (謙唵亭)" 이라는

현판 글씨는 그의 스승인 퇴계이황이 직접 써준 것이다.

이곳에서는 벼슬길을 멀리 하고 자연 속에서 학문에만 전념 하고자

 했던  겸암 선생의 면모를 느낄수 있다.

 

 

 

 

 

 

 

 

보용대는 정말 깎아지른 절벽이다.

 

 

 

 

 

 

 

옥연정사   (중요 민속자료 제88호)

 

서애 류성룡선생이 1588년에 지은 정사이다.

선생이 관직에서 물러난뒤

인진왜란에 대해 기록한 "懲毖錄"을 쓴

장소로 도 그 의미가 깊다.마을을 휘 감아 흐르는 강물이

이 곳에 이르러 깊어 지는데,

 깨끗하고 맑은 물빛이 옥과 같아서 정사의 이름도 "玉淵" 이라고 하였다.

 

 

 

 

화천서원 (花川書院)

화천서원은 도산서원 등 향촌 사림의 동의를 얻어 1786년에

건립 하엿다. 건립후 겸암(謙唵) 류운룡(柳雲龍)을 주향으로 하고

동리9東籬) 김윤안(金允安)과 종 손자인 졸재(拙齋)

류원지(柳元之)를 배향하고 100여 년이상 춘추로 향사를 지내 오다가

 1871년 서원 철폐령에 의해 강당과 주사만 남기고 훼철됐다.

서원 훼철을 아쉬워 하던 후손들은 1966년 부터

기금을 모아 사림들의 공론으로 1996년에 복설하여 지금의 모습을 갖추고 있다.

화천서원은 강당과 주사를 제외한 건물들이 1996년에 복설한 것으로

강당에서 19세기 이전의 오랜 양식을 부분적으로 찿아 볼수 있으나 전체적으로 볼때

건축적인 측면보다는 부용대 우측에 옥연정사와 함께 초점 경관을 이루고 있는

학문적 장소성이 강한 건축 유구라는 점에 비중을 두어 기념물로 지정 하기로 한다.

  (출처 " 문화재청)

 

 

 

나루터

 

 

 

만송정 솔숲

 

 

 

 

 

 

 

초가마을

 

 

 

 

 

 

 

 

 

 

 

벚꽃 길~

 

 

 

 

 

 

 

 

 

 

 

 

 

 

 

 

 

 

 

어제와 오늘사이 산간에는

 폭설이 내렸는지 먼산 머리에 하얀 눈이 쌓여 있다.

 

 

 

 

 

 

 

 

 

 

 

 

 

 

 

 

매화

 

 

 

 

 

 

 

 

 

 

 

 

 

 

 

 

 

 

 

 

 

 

 

선비마을이다 보니 가로등도 선비님이....ㅋ~

 

 

 

 

 

 

 

 

 

 

 

 

 

 

 

 

 

 

 

 

 

 

 

 안동에 오면

안동 간고등어 정식은 꼭 먹어봐야 하는 코스란다,

 

 

 

 고등어가 정말 토실 토실 살이많고

간고등어 인데 짜지도 않으며 맛이 있다.

 

 

 

 

 

 

 

 

 

 

 

 

 

 

안동을 속속들이 여행을 해보기는 처음이지만

선비의 고장답게 옛 역사와 전통이 묻어 나는곳에서

안동의 류씨 종가. 고택, 류씨마을 에 대해 많이 배우고 간다.

조선시대 영의정을 지냈던 류성룡 일가의

대쪽같던 성품이 화회마을 전체에서 묻어나는 느낌이다.

고택의 양반가에 비해  서민이 살았던 사랑채, 문간채 등 초가에는

과학문명이 발달하지 않았던 그 옛날이나 과학이 너무 발달한

요즘이나 서민들의 삶은 초라하고 힘이 들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암튼 이번 안동기행에서는 다소 몰랐던

 전통 문화와 역사를 배우며 여행한다는것이 많은 즐거움을 줬다.

(다음은 이혜정 요리 연구가와의 토크 콘서트와 체험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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